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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신규 간호사의 '태움' 경험과 드는 생각

view-daon 2024. 12. 3.

1. '태움'의 대상이 되다.

40대 신규 간호사, 저에게 붙어 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랍니다.

첫 병원 입사 전부터 저의 나이와 경력은 소문이 나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일반적으로 40대 간호사분들은 올드 선생님(고연차 선배 간호사)이거나 수간호사 선생님이상이더라구요.

그런데 40대 신규라니...... 간호 생태계를 교란(?)시기키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태움'의 대상이 되었네요.

아이러니하게도 프리셉터(신규 간호사를 1:1로 교육하는 선배 간호사)로부터요.

다른 선배 간호사 선생님들과 동기들은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셉터 한 분의 태움으로 울면서 출퇴근을 하고 off날(쉬는 날)에도 병원에 가서 뵐 것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어땠냐고요?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셨습니다.

첫 만남부터 제대로 인사를 받아주신 적이 없었죠.

저 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해 주셨답니다.

제게는 늘 짜증스런 말투, 무시하는 말투와 차가운 눈빛으로 대하셨고, 광속도로 간략하게 교육을 진행하셨습니다. 

임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 신규인데 모른다고 매일 혼났습니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시고자 애쓰시는 다른 프리셉터 선생님들과 동기들의 친밀한 관계가 부러웠습니다.

용기를 내어 질문하면 "그것도 모르냐? 대학에서 배우지 않았냐? 모르면 공부해 와라. 내일 확인 하겠다 등..." 

3교대 출퇴근 전후, 심지어 off날에도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했는데도 프리셉터 선생님 앞에서는 늘 긴장하여 답변을 제대로 못해 혼나기 일쑤였습니다.

나중에는 질문을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딱 하루 프리셉터 선생님과 근무일정이 다른 날이 있었습니다.

그 날 선배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제게 하신 말씀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오늘은  프리셉터 선생님이 안 오니까 숨 좀 쉬세요. 그동안 질문하지 못했던 것 물어보시면 다 알려줄게요."

입사 후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았던 것 같아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태움'인 일들이 계속 일어났고, 힘들게 취업한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업무' 때문이 아닌 '태움'으로 '퇴사'를 결정하였습니다.

2. '태움'으로 '퇴사'를 결정하다.

이미 병원에서는 '태움'으로 응급퇴사(갑자기 퇴사)가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응급퇴사하고 싶었지만 정식으로 수간호사 선생님께 면담요청을 하고 진행하였습니다.

오랜기간의 사회생활 경험으로 세상은 좁고 마지막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이치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간호부장님은 조언과 함께 로테이션 근무를 권유하셨지만 간호사 전체집단에 미치는 제 프리셉터 선생님의 파워(?)를 경험했기에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병동 선생님들과 동기들에게 감사인사를 한 후 마지막으로 프리셉터 선생님께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간의 교육에 대해 감사를 드렸죠.

그런데 누구나 알 만한 제 퇴사이유를 그 분만은 모르시는 듯 했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인사마저도 제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선생님, 퇴사하면서 저하고 무슨 인사까지 해요? 선생님은 나이가 있는데 요양병원에 가시지 왜 여기에 오셨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일이 힘드셨을 거예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같은데 알아보시면 경력이 없어도 자리가 많이 있을 거예요."

"............................................... 네~ 알겠습니다. 그동안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그렇게 첫 병원에서 퇴사하였습니다. 

지금은 다른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퇴사, 그 이후의 이야기와 생각은 다음 기회에 써 보려고 합니다.

3. '태움'은 진행형, 재해석으로 마주하다.

지금의 병원에서도 '태움'은 존재합니다. 

모든 병원에서 존재하겠지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매일 태워지고 자주 울기도 하는데 이전처럼 활활 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간호현장에 있으면서 '태움'에 대한  재해석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병원은 환자 수에 비해 부족한 간호사 수로 운영되는데 간호사 처우는 고강도 업무에 비해 낮습니다.

그래서 '장롱면허'가 전체 간호사 수의 절반정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출처: Google

이런 상황에서 매년 고연차 간호사 선생님들은 생명을 돌보는 고강도 일을 하면서 동시에 신규 간호사들을 교육해야 하니 힘들 수 밖에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태움'도 열악한 간호 현실의 파생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래서일까요?

요즘은 '태움'에 대해 여전히 화가 나면서도 '지금 선배님도 힘드시구나~'라는 생각이 이상하게 들곤 하더라구요.

물론 간호현실과 다른 '매우 주관적인 태움(?)은 절대 유감이고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다시 대면한다면 우선 제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 '퇴사'를 고려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이 참 길었죠?

무거운 주제를 쓰려니 길어졌습니다.

행여나 저의 경험과 생각으로 인해 오해하시거나 상처받는 분들이 계신다면 주관적인 글임을 양해부탁드립니다.

 

오늘의 글을 마치면서 '생명을 돌보는 직업인만큼 충분한 간호인력과  근무환경, 보상체계가 지원된다면 간호사 동료끼리 서로를 돌보고 헤아리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신규 간호사의 성장을 좀 더 기다려 줄 여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태움'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집니다.

그리고 행여나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태움'으로 고심하시는 신규 간호사분들이 계시다면, 응원과 warm hug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알아요. 그 마음"

오늘도 여러분이 부디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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